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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고전소설

[리뷰]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아브락사스, 데미안 줄거리, 데미안 해석, 카인과 아벨, 예수와 도둑들,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herman hesse, 데미안 명대사)

by 체스토 2022. 5. 3.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작가 소개

헤르만 헤세 (1877~1962)

Herman Hesse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의 작은 도시 칼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선교사였고, 외삼촌은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했었다. 그는 이러한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철학과 종교에 관심이 많았고, 정의에 대한 탐구를 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창조에 대한 욕망도 가지고 있었다.

 

헤세는 명문 신학교인 마울브론 기숙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강압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학교를 뛰쳐나왔다. 그는 이후 자살 시도를 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고, 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 묘사되어있다.

 

그는 시계공장에서 견습공으로 1년 간 일했다. 하지만 공장 일은 작가를 준비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서점 점원으로 취직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1899년 첫 시집 '낭만의 노래'를 출간했다.

 

1904년 '페터 카멘친트'를 출간하여 작가로서 유명세를 얻는다. 이 책은 6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이 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부담을 던 헤세는 마리아와 결혼하여 3명의 아들을 낳는다.

 

헤세는 작가로서도 성공했고, 가정도 꾸렸기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리아와의 성격 차이와 아들의 병치레는 헤세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들었다. 그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의 지역으로 여행을 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헤세는 전쟁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동료 지식인들을 계몽하는 에세이를 작성하여 전쟁과 민족주의에 저항하도록 장려했다. 하지만 이 에세이로 인해 독일 언론의 비난과 질타를 받았고, 오랜 친구에게도 배신당했다. 국가의 폭력, 전쟁, 가족과의 불화,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불행이 헤세를 덮쳤고, 헤세는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당시 유명 정신 분석학자 칼 융의 도움을 받아서, 우울증을 극복한다. 이때부터 헤세는 자신의 우울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다.

 

헤세는 이후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의 명작들을 잇따라 출간한다. 니논 돌빈과 재혼하여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나갔고, 1943년에는 그의 마지막 소설 유리알 유희를 출간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헤세는 194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62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줄거리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 소설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 비해서 아는 것도 많고, 비범한 인물이다. 반면 싱클레어는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배움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세상의 이치들을 알려주고, 싱클레어는 이를 흡수한다. 싱클레어는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방황하고, 아픔을 느끼고,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결국 이 과정을 이겨내고 데미안과 같은 비범한 인물이 된다.

 

데미안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한 선입견을 깨라는 것이다. 우리는 으레 도둑질과 거짓말은 나쁜 것이며, 기부와 솔직함은 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과 악이 아닐 수도 있다. 홍길동이 도둑질을 해서, 배고픈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악인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서 타인에게 아픔을 주는 것은 선인가? 

 

카인과 아벨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카인은 예수의 사랑을 받는 동생 아벨을 때려서 죽인다. 예수는 카인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들이 카인을 살인자라는 이유로 해코지하지 못하도록 '표식'을 새겨준다. 

 

성경만 본다면 카인은 살인마이고, 아벨은 희생양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카인은 강하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고, 카인에게 새겨진 표식은 범인들이 비범인을 볼 때 우러러보는 존경의 표시라는 것이다. (약육강식처럼 느껴진다.)

 

싱클레어는 당연히 카인을 살인마라고 생각했고 '살인은 악'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데미안의 의견에 싱클레어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은, 사회가 정해놓아서 당연스럽게 흡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비판의식 없이 이를 흡수했고, 이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데미안의 말을 듣고, 선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많다. 살인이 악이라면 국가가 사형하는 것은 과연 옳은 판단인가? 국가가 개인을 살인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전쟁 상황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은 악인가? 살인이 악이라면 우리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전쟁도 할 수 없고, 범죄자를 사형시킬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기 마련이고, 이에 대한 기준은 오직 개인만이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예수와 도둑들도 마찬가지의 사례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박혀 있을 때, 옆엔 두 명의 도둑이 있었다. 한 명은 예수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용서를 빌었고, 한 명은 예수를 모욕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우리는 당연하게 자신의 행동에 용서를 구한 도둑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자신의 행동에 용서를 구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인 도둑이 더욱 믿을만한 사람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는 반은 천사이고, 반은 악마이다. 책에서는 천사와 악마를 모두 숭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인간도 무조건 착한 사람, 무조건 나쁜 사람은 없다. 착해 보이는 사람도 그림자가 있고, 어두운 사람도 빛나는 순간이 있다. 어떤 행위도 선한 행위로 보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양면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세상은 선과 악 2가지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다. 

 

추가로 볼만한 작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 헤르만 헤세 

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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